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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 - 2024년 4월일반 2024. 4. 15. 16:30
교육 관련 이미지 - Adobe Firefly로 생성하였습니다. 이하의 내용에는 아이토냐의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육자의 권한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단순한 훈계부터 체벌·학대의 차이점은 어떠한 것일지 명확한 정의가 가능할까요?
아이토냐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은 피겨 선수가 되기 위해 어릴 때부터 빙판에서 훈련합니다. 주인공의 엄마는 빙상 이용 시간을 아끼기 위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보채는 주인공에게 훈련이 끝날 때까지 참으라고 합니다.
아직 어린아이였던 주인공이 그 시간을 참을 수 있을 리 없습니다. 영화에서는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줌을 싸는 장면이 나옵니다.
2018년 한국에서 화제가 된 게시글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교사가 여러 번 화장실을 못 가게 해서 결국 학생이 오줌을 쌌다는 내용의 게시글입니다.
인터넷 게시글의 특성상 사실 여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인터넷에 게시된 정보만 보고 판단한다면, 진실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면 관심을 받기 위해서 자극적인 사건 자체를 만들어낸 자작극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그 사건의 사실여부를 깊게 따지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고, 해당 사건이 본문의 주제에 적절한 예시라고 생각해서 언급하였습니다.
2가지 사건을 비교해 보자면, 하나는 창작물 하나는 실제(실제라면) 사건인데, 결국 학대를 한 주체가 엄마이든 교사이든 결과적으로 아이 그리고 학생에게 치욕적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그게 내 자식이든, 학생이든 관계없이)을 지나치게 통제하고 괴롭히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일이라 막을 수 없는 일일까요? 사람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아직 적절한 교육체계를 만들지 못한 탓일까요.
부모는 어디까지 아이를 ‘훈육’할 수 있을까요. 교사의 권한은 어디까지일까요? 아이를 교육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누구의 책임일까요?
결국 자기 자식이니 교육의 주체는 부모라고 할 수 있을까요? 30년 전이라면 틀림없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2024년 현재 맞벌이를 하지 않고, 기본적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계층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결국 엄마(또는 아이를 주로 돌보기로 한 배우자) 역시 아이를 키우는데 온전히 열과 성을 다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체계적으로 관리가 가능한 공교육이 부족한 엄마의 역할까지 도맡아야 할까요? ‘현실적’ ‘예산’ 같은 이야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무리가 있는 주장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육 관련 문제를 논할 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힙니다. 어디까지가 선인지 정하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선을 정하지 않고, 소위 ‘유동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면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실상 불가능한 ‘교육’의 범위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권 관련해 여러 사건·사고로 시끄러울 때 교육청 매뉴얼이 화두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강력항의 ·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에게 일단 차를 권하고 진정시키라는 것이 주 골자였습니다.
상당한 비판을 받고 언론에서도 다루자, 해당 내용을 부랴부랴 바꾼다는 입장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매뉴얼이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필자가 알 수는 없는 일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교과과정 · 행정 · 아이들 관리를 모두 해야 하는 교사의 업무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비해 아이들의 수는 줄었습니다. 출산율만 봐도 알 수 있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교사들의 고충은 딱히 줄어들지 않은 것은 저만의 착각인 것일까요.
교사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어디까지가 공적인 학교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사적인 가족의 영역일까요.
교권 추락은 과거 폭력 교사들의 인과응보에 지나지 않을까요. 아니면, 시대의 흐름에 적절한 교육체계를 적용하지 못해 나오는 불협화음일까요.
2024년, 현대사회는 상당히 빨리 변했습니다. 특히 2000년대 불과 20여 년 전의 사회와 비교해 봐도 상당히 많은 것이 변했음을 민감하지 않은 사람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인간은 그렇게 빨리 변하지 못합니다. 특히 몇몇 신체적 특징의 경우는 아직도 원시시대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교육제도 역시 그렇습니다. 신체적 특징처럼 엄청나게 오랫동안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년 진화하는 현대사회에 보조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안 그래도 정답이 없는 문제인 교육에 정밀한 ‘답’을 요구한다면 더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과 같은 ‘가족’의 교육적 기능을 기대하기만 한다는 것도 현실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한두 번 ‘불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고 심도가 있게, 지금부터 10년 정도 실질적 진척이 이뤄지는 논의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10년이 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교육이 급변하는 시대상을 따라잡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하나하나 확인하고 합의해 나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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