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펜하이머 포스터 이하의 내용에는 오펜하이머의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8월 15일 오펜하이머가 개봉하는 날, 필자는 아무 생각 없이 6시 10분에 시작하는 영화 취소 표를 줍기 위해 영화관에 갔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꼭두새벽에 취소 표가 안 나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취소표는 총 10여 표도 나오지 않은 것 같았고 그마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그중에 제가 예매할 수 있는 표는 없었습니다.
거기에 IMAX 같은 경우는 개봉일 뿐이 아니라 그냥 자리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의 2주 이상 오펜하이머의 관람을 미뤄야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관람한 오펜하이머는 상당히 좋은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잔잔한’ 영화가 왜이리 인기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 들었습니다.
아마 오펜하이머의 흥행은 놀란 감독의 이름값에 기댄 부분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재미없다거나, 기대보다 별로였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관람석을 빠르게 얻지 못한 자의 일종의 푸념이랄까요.
오펜하이머라는 영화는 말 그대로, 오펜하이머라는 사람의 일생을 그리고 있습니다. ‘일대기’, ‘전기’,‘일기’ 어떤 표현이 더 적절할까요. 영화는 대부분 오펜하이머의 입장에서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지만, 일부 장면은 좀 더 중립적인 입장에서 묘사하기도 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색채’의 유무라고 하겠습니다만, 굳이 그런 차이까지 신경 써가며 관람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오펜하이머라는 사람은 ‘바람둥이’에 사람을 ‘지적 능력’이라는 척도로 평가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바람직한 ‘위인’, 아니 ‘평범한 시민’이라도 그러면 안 되겠지요.
그래도 청문회에서 자신의 불륜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증언하도록 강요받을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모욕과 수치를 감내하는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발가벗겨져’ 있습니다.
바로 뒤에서 부인이 청문 내용을 다 듣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오펜하이머는 때로는 바보 같은 짓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미 없어 보이는 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전자가 청산가리를 사과에 주입한 것이라면, 후자는 이미 결과가 정해진 청문회의 일정을 끝까지 소화하는 것이겠지요.
오펜하이머는 복잡한 물리학 계산이나, 수학적, 공학적 수식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저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고 있으면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오펜하이머’의 시점에서 같이 진행하면 되니까요. 사실 오펜하이머의 등장인물들은 모르기가 더 어렵습니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과학자가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하이델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닐스 보어의 양자역학.
이들뿐만이 아니라 ‘연구자 1’, ‘과학자 1’로 보이는 인물들 역시 과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명사들입니다. 당시 모든 최신예 이론을 결집해 만들어 낸 것이 ‘원자폭탄’, ‘수소폭탄’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요.
핵 개발은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듯 보이지만, 사실 핵 개발이 성공하고 그 폭발을 지켜보는 것은 극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굳이 따지면 ‘1막’의 끝이라고 할까요.
저명한 과학자들과의 관계, 제 2차 세계대전, ‘핵폭탄’의 발명만 뺀다면 오펜하이머도 평범한(?) 물리학자일까요?
오펜하이머의 일생에서 그것들을 뺀다면 남는 것이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악역’을 맡고 있는 스트로스 제독 입장에서도 오펜하이머에 대한 악감정이 쌓일 만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지적 능력’을 중요시하는 ‘물리학자’입니다. 그런 그에게 ‘구두 장사’나 하던 스트로스는 ‘제독’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동위원소를 수출하는 것에 대한 청문회에서도 과학적 사실만 가지고 발언하면 될 것을 굳이 모욕적 언사를 곁들입니다. 옆자리의 사람도 좀 심하다고 지적할 정도입니다.
그것뿐인가요. 스트로스 제독이 아들 부부를 데리고 왔는데, 오펜하이머는 깔끔하게 무시로 일관합니다. 이쯤 되면 앙금이 없는 사람이 대단한 성인군자라고 할 정도입니다.
스트로스 제독은 분명 오펜하이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이유는 없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 ‘앙갚음’이라는 것이 ‘메카시즘’이라는 시대적 광풍을 이용한 마녀사냥이었습니다.
영리하게도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고 ‘청문회’를 가장해 오펜하이머의 일생을 부정하고, 난도질하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수소폭탄 개발 관련으로 오펜하이머에게 좋은 감정이 없는 ‘텔러’까지 가세하니,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는 그야말로 쥐잡듯이 털립니다.
영화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오펜하이머에 대한 마녀사냥은 끝이 없어서 그의 딸마저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반응형그럴만했나? 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펜하이머가 잘한 것도 없지만, ‘매카시즘’이라는 시대적 광풍을 이용한 스트로스의 복수는 상당히 선을 많이 넘은 듯이 보입니다.
단순히 모욕을 되갚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펜하이머의 가족, 명예, 업적, 일생 모두를 부정하고 그가 ‘이적행위’ 가능성이 있다며 ‘보안인가’를 취소하기에 이릅니다. 그에 편승한 ‘텔러’가 캐서린에게 악수를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오펜하이머 영화는 IMAX를 최대한 활용한 영상적 측면, 극 초기부터 쿵쿵거리던 발소리를 이용한 음향적 측면,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설명이 필요 없는 격동의 시기, 이념적으로 극한 대립으로 이어지는 초기 냉전, 그러한 모든 것들도 잘 표현되었지만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일생을 ‘한편’의 영화로서 한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감상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응형'영화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1) 2023.10.30 잠 (0) 2023.10.25 아만다 (0) 2023.10.10 달짝지근해 - 7510 (1) 2023.10.07 메가로돈2 (0) 2023.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