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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영화 감상 2024. 7. 7. 00:0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포스터

     

     

    이하의 내용에는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의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필자는 아무 생각 없이 이 영화를 예매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살짝 실망했습니다. 고전 영화를 다시 틀어주는 명화극장인 줄 모르고 예매하다니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통식으로 만든 ‘진짜’ 전통음식은 여러 조미료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는 맛이 없는 것처럼, 흑백 화면이 나오는 것을 보았을 때 기대치를 상당히 낮췄습니다.

     

     장루이와 비달의 잡담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심드렁하게 스크린을 응시하던 필자는 아저씨 두 명이 논하는 지적 ·종교적 허영이 함유된 대화에 빠져들었습니다.

     

     거기에 모드가 합류하면서 생기는 성적 긴장감까지 더해지면, 상당히 영화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대단한 화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비달, 루이, 모드의 ‘현재’ ‘관계’와 연계된 파스칼의 이야기, 그리고 종교적 이야기, 아니 고상하게 포장했지만 결국 성적인 이야기인가요.

     

     이혼녀의 집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발생하는 성적 긴장감과 함께 이어지는 종교적 지적 유희라고 간단하게 일축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파스칼의 종교적 성찰이 더해지면 꽤 흥미로워집니다.

     

     파스칼은 신학자가 아니라, 수학자입니다. 거기에 팡세라는 저술 자체는 신학적·수학적으로 엄밀하게 따지면, 고평가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팡세에서 주장한 ‘신을 믿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논한 내용은 꽤 흥미롭습니다. 팡세 원문의 표현을 빌릴 수도 있겠지만, 본 감상에서는 비달의 이야기를 인용하겠습니다.

     

     A. 모든 정치적 행위에는 의미가 없다.

     

     B. 역사적 사건에는 의미가 있다.

     

     가령 B의 확률이 10%, 아니 매우 낮다고 해도 그에 대한 효용이 무한에 가깝기 때문에 그 기댓값은 무한하다는 것입니다.

     

     굳이 수학적으로 파스칼의 ‘신학과 통계’에 대해 반박할 필요는 없습니다. 파스칼 역시 수학자로서 그 오류를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은 방금 제시한 파스칼의 신앙론에 얀센주의적 종교관과 지식인으로서 약간의 허세를 더했습니다. (자막에는 얀선으로 나왔습니다만, 얀선이라는 표현 자체를 처음 보았고, 아마 맥락상 얀센이 맞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울한 파스칼이 종교에 귀의하면서, 끄적인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그리고 믿음을 가져야 하는 근거인 ‘확률의 기댓값’, 그리고 얀센주의는 주인공 장루이가 좋아하는 금발 ‘성당’ 아가씨 프랑수아로 귀결됩니다. 

     

     모드와의 하룻밤. 비달과 모드와 함께한 등산. 프랑수아와의 자연스러운 만남에서 이어지는 차 한잔.

     

     루이는 자신의 이상형인 종교적인 금발 여자 친구를 얻었기 때문에 해피엔딩일까요?

     

     비달은 모드와의 이별 여행 이후에 새로운 여자 친구를 사귀었을까요?

     

     모드와 프랑수아는 어떠한 관계였을까요? 

     

     직접적으로 표현하거나, 화면에 담는다면 오히려 흥이 깨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자기들만’ 아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영화는 좋은 평을 받기 힘듭니다.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은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정확한 위치를 찾아보려, 지적 허영을 부려보지만, 그 앞은 믿음에 대한 확률뿐입니다.

     

     제 감상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랜만에 파스칼을 다시 읽었습니다. 실물 책을 산 것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마존 등에서 전자책으로 다운로드 받아 읽거나, 웹소설을 읽는 것이 아닌, ‘종이책’을 읽고 싶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학창 시절 -고등학교인지 중학교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읽었던, 번역이 어땠는지, 맥락이 어떤지, 파스칼이라는 이름과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것밖에 몰랐던, 그 시절의 팡세를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서점에서 전문가의 완역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깔끔하게 정리된 파스칼의 뇌까림을 보며, 격세지감이라고 할 만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문헌

     

    블레즈 파스칼 저. 팡세 - 분류된 단장. 김화영 옮김. IVP 클래식즈.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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