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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포스터 이하의 내용에는 하얼빈의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얼빈이라는 영화는 안중근이라는 사람이 하얼빈역에서 거사를 치르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담아냅니다.
몇몇 사극들이 극적 재미를 위해서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경우도 많은데, 몇몇 등장인물들이 허구임에도 하얼빈은 안중근이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담담하게 진행되는 극의 전개와 더불어 이토 히로부미에게 물리적·정신적으로 점차 다가가는 안중근의 모습은 인상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몇 가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먼저 담담한 극 분위기와는 별개로 사극, 그것도 100년이 조금 더 지난 근현대사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굳이 가상의 인물들이 필요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창섭, 김상현은 모두 가상의 인물입니다. 물론 모티브가 된 독립운동가가 있습니다만, 그들의 ‘존재’ 자체는 허구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두 명의 인물은 안중근과 더불어 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주연이며, 중반부에 합류하는 공부인까지 더하면 가상의 인물 3명이 안중근을 보좌하거나 배신한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그 지점에서 필자는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주인공인 안중근을 제외하면, 안중근을 견제하는 이창섭, 보좌하는 김상현, 지원하는 공부인 3명이 모두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창섭이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에, 이창섭과 안중근이 펼치는 미묘한 권력다툼은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김상현이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에, 독립운동가에서 변절한 김상현을 바라보는 필자의 감상은 ‘창작물’의 ‘배신자’를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공부인’이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에, 폭탄의 재료를 얻기 위해 떠난 여정도 그다지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필자가 주장하는 바가 지금까지 학계에서 논의된 역사적 상황과 한치도 다르지 않게 고증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극에서 고증을 너무나 철저하게 한다면, 오히려 어색해지거나 영상물로서 가치가 없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상물에서 적절한 각색과 역사 인물에 대한 해석은 필수입니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하얼빈이라는 영화가 어필할 만한 관객층이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진지하게 돌아보고, 안중근 의사들과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감상하러 온 관객들은 가상의 인물들이 주도하는 극 진행에 조금 위화감을 느낄 것입니다.
고증보다는 안중근 의사가 주인공인 액션이나 오락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너무나 담담하게 진행되는 극의 구조가 지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얼빈은 조금 더 공략 관객층을 명확히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제 감상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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