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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맨 포스터 이하의 내용에는 도그맨의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쁜 삶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좋은 삶이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세련된 표현 속에 숨겨진 ‘칼날’과도 같은 대사들은 가슴 속에 자연스럽게 박힙니다.
‘어서 오렴 반가운 단검아. 이제 내 가슴이 너의 칼집이란다.’
셰익스피어의 한 구절을 인용하게 만드는 이 영화는 모글리에서 동심을 빼고 무대를 현대로 옮긴 뒤 몇 가지 비극적 속성을 추가한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전혀 다른 이야기일 뿐일까요.
도그맨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인물을 어떻게 칭해야 할까요? 더글러스? 주인공? 도그맨? 그를 어떻게 표현해야 적절할까요.
그의 삶은 ‘현실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가혹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무리 가상의 캐릭터라고는 하지만 너무 가혹한 설정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반면 개와 함께 ‘절도’ ‘전투’ ‘생활’을 하는 그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연극’ 그 자체가 되어 버립니다.
‘셰익스피어를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연기를 할 수 있어.’
그에게 있어서 연기란 무엇일까요? 아니 그에게 있어서 삶이란, 신앙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환상 속 자신을 그리다 못해, 그 환상이 그의 현존재로 화했다고 하면 과한 표현인가요.
아버지의 학대, 어머니의 도주, 형의 비정상적인 신앙과 아버지에 대한 의존.
그런 그에게 실존적 삶을 살라고, ‘일침’ 하기에는 너무나 고달프고 가혹한 측면이 있습니다.
살인 · 절도 · 협박.
비정상적인 범죄행위도 ‘환상’ 속에서 개들과 함께한다면 그다지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협박은 정당한 거래로 재탄생하며, 절도는 부의 재분배가 되고, 살인은 정당방위로 명명됩니다.
다르게 말하면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이유로 범죄를 정당화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는 지점이겠습니다만, 사실 그의 ‘도그맨’의 환상 속 정당화는 사실 견고한 것은 아닙니다.
정신과 의사는 더글러스의 안타까운 사연이 그의 행위에 면책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며, 도그맨은 자신의 행동이 범죄임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서, 그 정당화마저, 아니 마지막으로 그가 가지고 있던 환상마저 깨 버리면 그의 삶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개와 철창에 갇힌 삶. 은밀한 짝사랑이 깨지는 삶. 오갈 데 없는 삶.
환상을 좇아 여장하는 삶? 휠체어에 평생 앉아야 하는 삶?
결국 ‘도그맨’이 있을 곳은 ‘이승’에는 없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제 감상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신
더글러스는 우아한 비극의 주인공임은 틀림없습니다만, 그에게 가해진 고난들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영화가 완성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구한’ 사연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필자가 ‘도그맨’을 너무 연민 어린 눈으로 지켜봐서 그런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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