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추락의 해부
    영화 감상 2024. 3. 25. 09:45

    추락의 해부 포스터

     

     

    이하의 내용에는 추락의 해부의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당히 담백하기 그지없는 영화입니다. 마치 10여 년 전의 예술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극 진행에 ‘양념’이 하나도 안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영화관에서 꼭 봐야 할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필자도 영화관에서 가방 지퍼를 조금 열었다 닫았다 할 정도로 잔잔한 이 영화는 만약 집에서 보게 된다면 ‘빠르게’ 넘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시작이 반이다.’ ‘작업 흥분’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영화관에 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집중해서 ‘넘기기’ ‘2배속’ 없이 끝까지 보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그러한 집중력이 필요한 긴 영상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가 천천히 쌓아가는 ‘지겨움’을 어느 정도 이겨낼 수만 있다면, 추락의 해부는 그제야 자신의 장점과 매력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영상적 측면도 훌륭하지만, 각 장면에 삽입된 음향 역시 감독이 상당히 신경 쓴 것이 느껴집니다. 음향에 문외한인 필자도 알아챌 정도입니다.

     

     다만 그래도 관객 입장에서 불평하자면 너무나 ‘건강식’ 같은 느낌이라, 맛·재미가 조금 부족하다고 하겠습니다.

     

     극의 주연 산드라와 그녀의 남편의 관계는 정확하게 어떠한 관계였을까요? 단서는 오직 검사, 변호사 측이 법정에 제출한 증거물뿐입니다.

     

     실제 부부의 관계는 어떠했을지 알기 어렵습니다. 산드라는 부부싸움의 녹취록을 듣고 이렇게 항변합니다.

     

     “해당 대화는 감정의 일시적 격앙과 부침을 나타낼 뿐. 부부관계의 단편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녀의 말이 맞을까요? 아니면 그 부부싸움은 남편을 살해한 감정의 배경이 되는 기폭제였을까요.

     

     ‘그날’ 다니엘은 무엇을 들었을까요? 다니엘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변호사의 입장에서 볼 때는 승산이 있어 보이는 소송인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면 뱅상 변호사는 산드라의 말을 들으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결국 사뮈엘의 죽음은 자살인 것인가요? 아니면 교묘하게 위장되었지만, 결국 타살일까요.

     

     명확한 법정 증거는 없습니다. 추정만으로 살인을 입증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임을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다만 영화의 경우에는 용의자-산드라-가 동기와 실행 능력이 있어 보이는 데다가, 범행 장소마저 한정적이기 때문에 얼추 균형이 맞아 보이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법정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수사’하는 부분이 아니라 ‘법정 공방’의 논리적 대결을 즐기는 편입니다. ‘추락의 해부’에서는 법정 장면이 ‘구색 갖추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와 검사가 치열하게 반대신문을 펼칩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여러 진실은 주인공인 산드라에게도 불편하지만, 아직 ‘어린이’에 가까운 다니엘에게도 큰 충격이 아니었다면 거짓이라고 하겠습니다.

     

     누구의 말이 맞고 누구의 말이 틀렸는지를 따지기는 어렵습니다. 살인이 일어났을 수도 있고, 불의의 사고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는 사뮈엘이 자살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명확한 답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일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언제나 정답이 정해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법적 판결은 O와 X뿐입니다. 단 하나의 방향을 가리킬 뿐입니다. 중간은, 타협 지점은 법정에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뮈엘의 죽음은 살인입니까? 아니면 자살입니까.

     

     무엇 하나 정확한 것이 없는 모호한 상황에서, 모두 선택 해야 하는 시간이 도래합니다. 판사, 검사, 변호사, 배심원뿐만이 아니라, 산드라도 그렇습니다. 다니엘도 예외는 아닙니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법정 공방과 증거들만 가지고는 정확한 진상을 알기 어렵습니다. 유죄판결을 내리려면 ‘합리적 의심’을 넘어 그 죄과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판사와 배심원이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어린아이가 나름 그러한 것들을 증명하려고 애쓴다면, 나 좀 도와달라고 울부짖는 것이 오히려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눈이 먼 자식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남편, 자신의 작품세계 외에는 그다지 관심 없어 보이는 외도 전력이 있는 아내.

     

     아빠가 실의에 빠져 자살했는지, 엄마가 부부싸움 끝에 살해했는지를 알고 싶어하는 눈 먼 아이.

     

     배심원의 평결이 나오고도, 사건의 진상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습니다. 그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남았을 뿐입니다.

     

     사건의 ‘진상’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필자가 ‘홈즈’처럼 추리 쇼를 펼치는 것은 영화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말을 아끼겠습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요새 영화들의 깜짝 연출에 길들어서인지, 산드라가 무죄판결을 받고 집에 오는 와중에 무슨 사건이 또 시작되지 않을까 지레 걱정되더군요.

     

     제 감상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응형

    '영화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멸의 칼날 - 인연의 기적, 그리고 합동강화 훈련으로  (0) 2024.04.01
    아가일  (0) 2024.03.30
    웡카  (1) 2024.03.20
    도그맨  (0) 2024.03.10
    덤머니  (0) 2024.03.07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