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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여운 것들
    영화 감상 2024. 4. 20. 09:31

    가여운 것들 포스터

     

     

     

    이하의 내용에는 가여운 것들의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삶을 물리적으로 두 번 산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요.

     

     벨라. 자기 아이의 뇌를 이식한 엄마는 어떠한 존재일까요? 괴물? 새로운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뇌’와 ‘육체’의 발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벨라의 창조자. 괴물? 고드윈 하나님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현대인이 볼 때 과학자나 의사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어떤 기사에서는 벨라를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표현하던데, 사실 고드윈이 더 프랑켄슈타인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벨라의 약혼자는 괴물일까요? 소위 NTR을 당하는 것에도 벨라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습니다. 벨라의 외모에 반한 것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인생을 강제로 ‘살게’ 된 그녀의 처지에 동정하는 것일까요.

     

     벨라의 밀회자인 변호사 던컨도 괴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는 여자들을 울리고 다닌, 바람둥이였지만 벨라의 매력에 빠져서 헤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벨라가 그의 돈을 제멋대로 다 써 버리고 종국에는 창녀가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벨라의 옛 남편은 괴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장군’에게는 모든 곳이 전쟁터입니다. 전쟁터에는 아군과 적군뿐입니다.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인물도 극히 적습니다. 시종과 하녀들에게도 그 잣대가 적용됩니다. 옛 아내였던 벨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관객들은 벨라가 사실은 뇌수술을 통해 ‘생성’된 아이라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극의 진행에 따라 그녀의 행동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이는 미성년자의 행위에 의문을 품는 어른의 시선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극 후반부의 결혼식에서 도망가는(과거의 기억을 찾기 위해서라지만) 벨라의 모습은 미성년자는 아니지만, 젊은 혈기로 인해 치기를 부리는 모습이라고 보면 너무나도 적절한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막상 글로 적고 보니 정상적이라고 할 만한 인물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두가 가여운 것들일까요? 아니면 모두 어딘가 망가진 괴물들입니까?

     

     가여운 것들은 이러한 망가진 인물들의 행동을 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영화이지만, 그보다 더 적절한 것은 가상의 시대적 배경이 상당히 ‘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극에서 직접적으로 시대적 배경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은 제 기억으로는 없지만, 너무나도 적절한 장면들이 많아서 몇 자 적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 극의 한 장면 장면을 자세히 분석하는 것은 지양하는 편이지만, 몇 가지는 적어야만 하겠습니다.

     

     별 의미 없는 장면에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한물간 음유시인의 노래 같은 느낌이 듭니다만, 그래도 해야만 하겠습니다.

     

    해리 애슬리. 피식자의 입장이 아닌 포식자 입장에 있는 인물입니다. 그의 위치를 봐도 벨라를 ‘오열’하게 만든 유람선 아래쪽이 아니라 유람선에 있는 인물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벨라는 그에게 이런 평가를 내립니다.

     

    “현실주의자라고 스스로를 포장한, 현실에 꺾여버린 냉소적인 소년이 보일 뿐이다.”

     

     스팀펑크라는 애매한, 현실의 역사와는 별개의 세계관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흑인이 피식자가 아닌 포식자 위치에 서려면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했을까요?

     

      세상의 부조리를 보고 바꾸자는 희망을 품기 전에, 냉혹한 현실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만으로도 칭송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해리에게 ‘현실에 꺾인 냉소주의자 소년’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발언의 주체가 ‘여성’ ‘청소년’(정신은) 이라면 어떠할까요.

     

     투표권조차 없는 유의미한 생산수단이 ‘몸’ 그 자체뿐인 여성이지만, 또한 세상의 부조리를 보고 바꾸겠다는 꿈을 꿀 정도로 대단한 ‘배경’을 가진 ‘아가씨’ 벨라의 발언이라면 어떻습니까.

     

     가여운 것들에는 상기 장면들을 제외하고도 상당히 많은 장면이 생각해 볼 만한 것들로 가득합니다. 더욱 좋은 점은 그러한 것들을 전혀 느끼지 못해도 ‘영화 자체 내용’만 가지고도 하나의 이야기가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화면은 자연스럽게 흑백·색채가 대비되며 색이 극의 줄거리에 ‘개입’된 것이 ‘티’가 나지만, 화면구성이 어렵거나 현학적이지는 않습니다. 극 전반적으로 무거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가면서도, 자연스럽게 벨라의 생각에 공감하는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성적 묘사와 섹스 장면들입니다. 가여운 것들만큼 성적인 대사와 섹스를 적극적으로 다루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기는 의외로 상당히 어렵습니다.

     

     성적 묘사 특성상, 균형을 잡아 묘사하기는 난이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섹스를 너무나 예술적으로 다룬다면, 지나치게 미학적, 피상적인 화면이 되어서 관객들에게 지루함마저 안길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누드화에 대한 해설 비디오를 본 적이 있는데, 친구 대부분은 초반에 가슴이 나온다고 환호했으나 곧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빠졌습니다.

     

     반면에 섹스의 자극성에 지나치게 집중한다면, 관객들의 흥분을 유지하기는 쉽지만, 천박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포르노그라피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에 섹스 그 자체를 소재로써 다루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입니다만, 가여운 것들은 섹스 그 자체를 매우 적절하게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우 크게 가점을 받을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상의 시대상이지만, 대략 언제쯤인지 유추할 수 있는 이 시대에서 묘사되는 창녀, 신부, 공산주의에 대한 낭만적 믿음 등을 보고 있자면, 환상 속 세계에서 익숙한 현실의 역사를 마주하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장면들, 미장셴에 대한 것은 보통 자세하게 적는 편은 아닙니다만, 지금 필자는 마치 시험에 아는 문제가 나와서 단번에 정답을 맞힌 후에도 득의의 미소를 지울 수 없는 고등학생의 심정과도 비슷한 고양감을 느낍니다.

     

     제 감상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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