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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포스터 이하의 내용에는 파묘의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당 둘, 풍수사 하나(지관), 장의사 한 명이 펼치는 오컬트 이야기입니다.
종교적 색채가 짙다면 짙고, 그다지 관련 없이 겉모습만을 차용했다고 주장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 신비주의적 특색을 스크린에 적절하게 옮긴 영화입니다.
이른바 종교적 의례, 신학적 요소를 다룬다기보다는 ‘오컬트’, ‘신비학’의 특색이 더 짙고 깊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종교, 신학적으로 ‘진지하게’ 다가갈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괜히 영화의 특정 요소가 ‘이단’이라고 몰아가거나, 특정 종교를 홀대했다고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묫자리’를 잘못 써서 조상신에게 고통받는 후손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묫자리라는 것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얼핏 보면 나쁘지 않은 형세지만, 부근에는 여우가 사는 모양이고 묘는 사실상 버려진 것처럼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일제시대 부역자였던, 증조할아버지의 악령은 험지에 자신을 박아놓고, 관심을 끊은 후손들에게 단단히 화가 난 것처럼 보입니다.
김상덕-풍수사-는 이 묫자리를 ‘파’하는 것이 그렇게 내키지 않아 보입니다. 이화림-무당-과 몇 번 언쟁을 하더니, 결국 대살굿을 하기로 동의하긴 하지만요.
꽤 볼만했던 대살굿이 성공한 듯 보입니다. 별 탈 없이 관을 꺼낸 일행은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관째’로 화장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관을 ‘슬쩍’ 열어보는 병원 측 인물이 있습니다. 파묘에서 가장 작위적으로 보이는 인물입니다. 귀신에게 홀렸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만요.
이제 자유롭게 풀려난 일제시대의 원령은 아들을 죽이고, 며느리를 희롱하고 손자의 목을 꺾습니다. 그 과정의 전개는 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전화와 문 두드림의 양자택일 선택지에 대한 약간의 ‘반전’ 역시 흥미로운 요소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악령은 제거-화장-됩니다. 그런데 영화는 끝나지 않습니다. ‘첩장’ ‘묘 밑의 묘’라는 극의 제 2막이 시작됩니다.
수직으로 세워진 묘 밑의 묘에는 뭐가 들었을까요?
긴 주술적 의식을 거친 그 묘의 ‘다이묘’는 혼백만 남은 영이 아닌, 어느 정도 실체를 갖춘 정령이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금강경마저 암송하는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청어? 은어?를 좋아하는 다이묘.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생선구이는 맛있습니다.
이후 여러 우여곡절 끝에 정령마저 제령하는 것이 영화의 기본 골자입니다. 오컬트, 괴력난신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아마 ‘취향저격’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역사적 사실이 오컬트에 개입되면 더 몰입도가 높아질 수도 있지만 흥이 깨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굳이 99%가 아니라고 언급한 말뚝 이야기도 그렇고, 세키가하라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역사적 사실’이 거론되면, 오컬트가 힘을 잃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지나간 일에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고 환상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조금 엉뚱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결말부의 내용을 곱씹어 보다 보니 이렇게 ‘직접적’으로 해결한다면, 히어로 영화와 다른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고려하면 적절한 결말인 것 같기도 하더군요.
제 감상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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