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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 포스터 이하의 내용에는 설계자의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설계자라는 영화의 ‘첫 인상’은 상당히 좋았습니다. 특히 극 초반, 긴장감 조성이 상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관객 입장에서 압박감마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주민등록번호라는 강력한 신원확인 수단이 있는 한국에서, ‘신원 미상’의 암살자단이라는 다소 편의주의적이고 황당하기까지 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랬습니다.
초반부의 ‘작업’ 내용은 영일 측 암살자들의 소개와 이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조명합니다.
자연스럽게 이 ‘살인자들’의 운명이 어떻게 결말을 맞을까 궁금해집니다. 괜찮은 액션신은 덤입니다.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설계자의 세계관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줄거리가 공회전하기 시작하고, 기대감과 호기심은 서서히 실망감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으로 바뀝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플라워 킬링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이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플라워 킬링 문은 3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동안 이야기의 생동감이 넘쳐 흘렀는데, 역으로 설계자는 이야기를 진행하는 힘을 잃어버리는 데에 1시간이면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설계자라는 영화는 계속 감상하다 보면, 분명 이입해야만 하는 관객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모든 소재가 겉도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주인공 영일이 멋있는 분위기와 ‘눈빛’을 보여준다고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아마 필자를 포함한 관객들은 ‘청소부’의 정체와 영일의 대결을 기대하거나, 아니면 영일이 그간 저지른 살인에 대한 업보를 청산하는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설계자의 마지막 ‘절정’ · ‘결말’ 부분은 상당히 김이 빠집니다. 이런 식으로 결말을 낼 것이면 ‘하우저’라는 이름을 감상에 적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극 초반 누구도 우리를 아는 사람은 없다고, 자만심마저 약간 섞인 듯한 영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경찰(?)에 자수해서, 두려움을 호소하는 한 명의 시민(?)만이 남았습니다.
설계자의 이러한 결말이 의미가 있으려면, 설계자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여서, 도저히 ‘실제’ 사건을 비틀지 못하는 경우에 가능할 것입니다.
사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해도, 만약 그 내용이 스크린에 옮겼을 때 부적절하거나, 어색한 부분이 있다면 적절하게 각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다큐멘터리도 그렇습니다.
설계자의 이런 결말은 지나친 설정 과잉일까요? 아니면 세계관에 걸맞은 ‘줄거리’가 준비되지 않은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의도적으로 이러한 결말을 유도한 것일까요? 필자가 알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설계자의 결말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실망스럽습니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의 ‘설계자’의 세계관의 구성 · 초안들을 멍하니 보다 보니, 세계관에 애정을 가진 제작진들임이 분명한데 왜 중반 이후에 그러한 전개를 펼쳤는지 의문만이 깊어졌습니다.
제 감상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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