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영화 감상 2025. 3. 30. 16:23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이하의 내용에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의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통무용에 약간은 진심인 여고생의 성장 드라마입니다.
극이 시작하면, 거두절미하고 ‘육고무’ 공연이 시작합니다.
시작하기 전에 주인공 차인영이 ‘연습용’ 신발을 신고 공연에 들어간다는 너무나 ‘클리셰’적 장면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육고무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시작되는 공연은 한국 전통무용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필자도 집중하게 만들 뻔했습니다.
왜 할 뻔했냐고 적었냐면, 육고무 공연에 집중하려는 순간 인영의 어머니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 장면과 교차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편모가정에서 씩씩하게 자라나던 차인영은 일가친척이 없는 ‘고아’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남자 친구(아직 아니라고는 하지만) 도윤도 있고, 동네 친한 약국 아저씨 동욱도 있습니다만, ‘미성년자’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아동복지과에서 시설 및 보호소에 입소하라고 권유하는 것을 피해 다니고, 집세를 내지 못해 ‘퇴거’ 처분을 받는 것은 고등학교 2학년이 다루기에는 조금 힘든 일일 수도 있겠지만, 인영은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인영이 다니는 무용단에 새로 부임한 감독은 설희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실력을 유지했고 국제적 명성이 있는 무용수입니다.
다만 ‘칼날’과도 같은 예리한 분위기의 설희는 그에 걸맞은 실력을 본인뿐 아니라 신임 감독이 되었기 때문에 ‘단원’에게도 강조합니다.
여고생들의 수다에서 알 수 있듯이 ‘무용’으로 대학을 갈 정도의 실력은 ‘나리’ 정도뿐입니다만, 설희는 자신의 평가 기준에 대해 타협할 생각이 없고, 마지막 공연에 대해서는 ‘오디션’ 까지 본다고 선언합니다.
인영은 설희의 선언과 상관없이 ‘살아남기’ 바쁩니다.
편의점에서 알바하고-미래의 남친과 함께-, 복지과 공무원들의 눈을 피한 뒤에, 집안 물건을 당근에 팔아넘긴 돈으로 공연단 건물에 ‘슬쩍’ 숨어서 살면서, 나리와 ‘박쥐’같은 친구들의 ‘핍박’도 웃어넘길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연단 건물에 숨어 살던 인영은 ‘야밤까지’ 야근하던 설희에게 들키고 둘의 ‘동거’가 시작됩니다.
칼날 같던 설희는 인영에게 ‘마녀’라고 불립니다만, 녹즙으로 식사를 대체하던 그녀도 헤실헤실 웃는 인영을 매몰차게만 대할 수는 없습니다.
인영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설희에게 직접 무용을 배워 점차 실력도 나아지고, 상황도 좋아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영과 설희의 만남은 그 둘에게 모두 좋은 자극이 되어, 무용에 좀 더 진심이 되거나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제는 따뜻한 마음으로 그다음의 드라마와 결말을 감상하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인영의 라이벌 나리와 박쥐 같은 친구들의 관계, 인영이 좀 더 무용에 집중하는 과정, 나리가 오디션에서 실수하는 것, 나리와 인영의 우정, 설희가 완벽주의를 조금 내려놓고 약사 도윤을 만나기 시작하는 것들 말입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는 엄청나게 참신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그 과정이 상당히 알찬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인영의 삶에서 무용으로 대학을 갈 수 없다면 의미 없다는 현실이나, 미성년자가 보호자 없이 살아남기의 현실적인 측면을 탐구하는 것은 아마 이 극의 분위기와는 조금 맞지 않을 것입니다.
인영이 그래도 웃으며, 새로운 삶을, 무용에 진심으로 도전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니까요.
라이벌 나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디션 실수 후 엄마와 갈등에서 나리의 모습에 한국의 교육과정과 극성 학부모를 투영해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너무 집중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나리가 오디션에서 실수했지만, 결국 마지막 공연에서 센터에서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설희의 변화가 너무 극적이라는 것과 그녀의 교육 방침이 정말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너무 깊게 논의하는 것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완벽한 무용수 마녀 설희가 자신의 마음을 열어 나가는 과정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따뜻한’ 드라마 영화가 아니라면, 약간은 비판받을 수도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설희의 몰아붙이는 교육방식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 마지막에 나리와 인영의 갈등도 사실상 설희의 압박때문에 커진 것이 아닐까? 하는 것 말입니다.
인영이 어떻게 복지부 공무원들을 다 피하고, 재산을 정리해서 극단에서 몰래 사는 게 가능한가? 하는 점도 굳이 따지자면 따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결국 ‘장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막아내고 ‘영화’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감독의 의도대로 ‘따라가’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고등학생들이 최선을 다해 무용을 연습하고 그들이 성장해 나가는(설희는 반대로 여유를 갖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에서는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필자는 크게 지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리지만 강한 척 웃어 넘기던 인영이 정말 하고 싶었던 무용에 집중한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던 나리가 이제 자신의 의지로 무용에 집중한다. 무용 이외에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았던 마녀 설희가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갖는다.
이들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생각하고, 극 최후반부의 ‘충실한’ 무용 공연은 말 그대로 대미를 장식했다고 생각합니다. 단아한 공연이었습니다.
제 감상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족
개인적으로 극 초반부에 육고무 공연이 인영의 엄마의 사망장면과 교차해 편집하기 보다는 육고무 공연을 조금 더 보여 준 뒤에 사망장면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서술한다면 너무 미학에만 집착한 것일까요.
반응형